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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두 장 앞으로 넘겨봅시다"


선생님의 말에 교과서 50쪽을 보던 학생들은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48쪽을 펴고, 다른 학생은 52쪽을 편다.


과연 '두 장 앞'은 어디일까.

DVD를 보다가도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난다.


"앞으로 빨리 넘겨봐"라고 하면 'rewind' 버튼을 눌러야 할까, 아니면 'fast forward' 버튼을 눌러야 할까.


진정한 전진은 나아감일까 물러남일까.


앞으로 간다지만 자세히 보면 뒤로 가는 것일 수도, 뒤로 간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철학이 위와 같은 언어유희에서도 보여진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던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를 위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5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해, 현 시점에서 시장 자리가 ‘따놓은 당상’이었던 안 교수의 양보는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양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그는 누구처럼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그다지 비장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홀가분한 미소를 띤 채 “제 삶을 믿고 성원해준 분들의 기대를 잊지 않고 제가 아닌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렇게 안철수는 후퇴를 말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의 전진을 보고 있다.


서울시장 도전의 꿈을 내려놓자 일약 차기 유력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평한다.


“안철수는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50%의 지지율을 양보할 만큼 대인배이든, 전략적인 대선을 준비할 만큼 치밀한 사람이든…”


전자라도 좋고, 후자라고 해도 이는 안 교수의 약점인 ‘현실 정치감각 부족’을 상쇄하는 것이니 그 역시 반갑다.


정치권에 불어닥치고 있는 ‘안철수 쇼크’는 이제부터다.


안철수 카드를 보며 심기가 불편해져 이해타산만 따지던 기존 정치인들은, 물러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바로 그 교훈부터 깨달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夢不浪
News는 한마디로 새로운 것들이다.

그 자체가 새로워야 하는 뉴스를 새로운 틀로 만든다는 것, 곧 new news를 만든다는 것은 news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땀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CBS가 노컷V라는 새로운 '뉴스틀'을 만들었다. '다큐 같은 뉴스', '만화 같은 뉴스', '패러디물 같은 뉴스', '드라마 같은 뉴스', '광고 같은 뉴스'...라고 주저리주저리 설명해야 할 정도로 '전에 없던 무엇'이다. 가장 '직관적인 뉴스'를 만들어보자는 고민으로부터 출발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 배를 만들기 위해 15인의 조선공(造船工)이 투입됐고, 곧이어 그 조선공들은 완성된 배에 승조원이 됐다. 조선공이자 승조원인 이들은 기자나 PD, 작가, 동영상촬영기자, 그래픽디자이너, 만화가를 망라했고, 나도 그중 일인이다.

오늘 그 배가 항해를 시작한다.

목적지는 망망대해다. 세상 도처가 우리의 정박지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곳이 우리의 좌초지점일 수도 있다.

이미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항공모함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우리는 작은 쾌속선에 불과하다.

그러나 큰 것이 작은 것을 먹는 게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먹는 시대라 하지 않던가.

자유는 잃을 게 없는 상태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느라 소란만 피우느니, 분명한 우리의 과거에 몸을 기대고 한발한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게 낫지 않겠나.


진수식을 몇시간 앞둔 9월 1일 새벽 2시 현재.

아직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우리 모두는 땀에 쩔은 채 한데 머물러 있지만 비로소 쾌감이 깃든 한숨을 토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격한 뜀박질 후 마라토너가 러너즈하이(runner's high)를 느끼듯, 늦여름 습기 가득한 사무실 속 우리들에게도 '메이커즈하이'(maker's high)가 다가온다.
Posted by 夢不浪
"광주의 도청 기자회견실 탁자에 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젊은이가 곧 죽게 될 것이란 예감을 받았다. 나에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은 그의 두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전남도청 학살을 하루 앞둔 1980년 5월 26일, 외신 기자들 앞에 섰던 윤상원을 묘사한 '볼티모어-선' 브래들리 마틴 기자의 말이다.

기자의 예감 대로 광주항쟁을 이끌던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 윤상원은 다음날 새벽 계염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만 서른.

죽음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무엇인지 알고도 남을 나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른 윤상원들이 세계 도처에 피어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등에 이어 현재는 리비아에서 수천 수만의 자스민 꽃들이 만개하고 있다.

뉴스 속 리비아 젊은이들은 잔뜩 화가 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 눈빛 속에는 죽음을 초탈한 비장함도 담겨 있다.

외로운 '바위섬'으로 남겨져 승리의 확신을 갖지 못했던 광주 시민군과는 달리 이들은 이미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상태이지만, 죽음의 의미는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시위대 학살을 위해 전투기와 용병이 동원됐고 현재까지의 사망자 수만도 수천명이라는 보도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 생존과 죽음, 살아남은 자와 죽은자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자국의 민주화를 위한 외교전에 한창인 이브라임 다바시 UN주재 리비아 차석 대사는 "용기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리비아의 거리 곳곳에서 총탄에 맞서고 있는 저들"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싸움은 끝이 날 테고, 역사는 이를 기록할 것이다.

그 기록이 단순한 '중동의 민주화 바람'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부모형제들을 등지고,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떠나고,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했던 젊은 자스민들의 향기가 역사 속에 고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1년 2월 27일
http://blog.nocutnews.co.kr/report.blog$1/1730376)
Posted by 夢不浪